공공기관-컨설팅사 ‘합작’해 자회사 몰아가기
컨설팅사 직원이 노사전협의기구 사회자·전문가로
직고용안 컨설팅 폐기하고, 자회사안 컨설팅 맡겨 세금 낭비
‘자회사 설립 전문기관’ 찾은 15개 기관 중 14곳 자회사 설립
전국공공연구노조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비정규직지부 간부들이 18일 낮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 반대와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삭발식을 열었다. 비정규직지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앞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세종/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전국공공연구노조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비정규직지부 간부들이 18일 낮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 반대와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삭발식을 열었다. 비정규직지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앞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세종/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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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과 함께 시작된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의 취지가 자회사 난립 문제로 흐려지고 있다. 신설된 자회사들이 기존 인력공급형 용역회사와 다르지 않고 고용안정이나 처우가 크게 나아지기 어려운 탓에 정규직화란 이름을 붙이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겨레>는 이번 정부 들어 설립된 자회사 60여곳의 문제점을 세차례에 걸쳐 들여다본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해법의 하나로 등장한 자회사가 기존 민간 용역업 회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자회사 전환 결정 과정에서 상당수 공공기관들이 대상 노동자들과 충분한 협의 대신 군사작전 하듯 자회사를 밀어붙인 것으로 드러났다. 예산 낭비라는 비판에도 자회사 결론을 얻기 위해 컨설팅 보고서를 중복 발주한 것으로 의심되는 공공기관도 발견됐다. 이 과정에서 갈렙앤컴퍼니 같은 민간 컨설팅 업체는 맞춤형 컨설팅 보고서를 제공하고 노사전(노동자·사용자·전문가)협의기구에 참여하는 등 공공기관과 자회사 밀어붙이기를 합작한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한겨레>가 19일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 이후 공공기관 58곳이 설립한 자회사 62곳(설립 예정 15곳 포함)의 컨설팅 보고서 34편과 노사전협의기구 회의록, 사업장별 노동조합의 증언 등을 분석·종합한 결과, 상당수 사업장의 자회사 설립 과정이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라) 식으로 진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자회사 노동자들이 지목하는 자회사 설립 과정의 가장 큰 문제는 “정해진 결과에 짜맞추듯 진행됐다”는 것이다.

    한국관광공사의 경우 2017년 8월 민간기관인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청소·경비·시설관리·안내 등 직군 노동자 281명의 정규직 전환 형태를 묻는 5천만원짜리 컨설팅을 맡겼다. 연구소 쪽은 석달 뒤인 11월 고용의 질 확보와 조직 운영의 유리함을 들어 직접 고용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러자 관광공사는 두달 뒤 갈렙 쪽에 같은 목적의 1억1천만원짜리 용역(2차례 계약)을 다시 맡겨 자회사 법인 설립 일정과 절차, 조직 구성안까지 상세히 담긴 보고서를 받았다.

익명을 요구한 관광공사 자회사의 한 노동자는 “직고용 안이 폐기되고 갈렙의 안이 받아들여져 결국 자회사로 가게 됐다. 관광공사가 얻고 싶은 결과를 얻으려고 세금을 낭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관광공사는 “다양한 결과를 받아 기관에 더 좋은 결론을 내기 위해 복수 컨설팅을 했다. 절차상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관광공사가 갈렙 쪽에 두번째 컨설팅을 의뢰하기 전인 그해 8월 말 여수광양항만공사에선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 추진 과정에서 공공기관 최초로 자회사 설립이 결정됐다. 이곳도 갈렙이 컨설팅을 맡은 사업장이다.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노동자와 사용자, 전문가가 모여 전환 방식을 결정하는 노사전협의기구는 마치 군사작전을 하듯 이틀간 단 두차례 회의만에 자회사 결론을 냈다.

이 과정에서 항만공사 쪽이 의뢰한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방향 검토를 위한 연구용역 최종보고서’를 작성한 갈렙 소속 최아무개 이사는 노사전협의기구에 전문가 자격으로 참석해 회의 진행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갈렙은 정규직 전환 방식을 도출하는 보고서에서 직접 고용 방식은 검토하지 않고 특수경비를 포함한 10개의 비정규직 직군 모두를 자회사 고용 형태로 전환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갈렙은 노사전협의기구 준비부터 합의 뒤 자회사 설립 과정 전반을 컨설팅하는 대가로 1억5200만원을 받았다.

여수광양항만공사가 자회사 결정을 한 뒤 관광공사를 비롯한 공공기관 14곳이 잇따라 갈렙 쪽과 컨설팅 계약을 맺었다. 이 가운데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을 뺀 14곳이 자회사 설립을 결정했다. 기획재정부의 ‘정규직 전환 관련 외부 연구용역 현황’ 문서를 보면, 갈렙은 전체 15개 공공기관과 22억7천만원의 용역 계약을 맺었다. 이번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을 위해 92개 공공기관이 지출한 민간 컨설팅 비용 약 87억원의 4분의 1이다.

갈렙은 자회사 설립을 두고 오랫동안 분쟁을 겪는 사업장에선 ‘해결사’로서의 능력도 발휘했다. 직업체험 강사 270여명의 직접 고용 여부를 두고 8개월 넘게 노사전협의기구 회의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던 한국잡월드는 지난해 2월께 갈렙과 컨설팅 수의계약을 맺은 뒤 한달여 만에 자회사를 설립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박영희 공공운수노조 잡월드분회장은 “갈렙 컨설턴트가 6번째 회의부터 들어와 사회자 역할을 했는데, 자회사 장점을 강조하고 노동자 쪽 발언을 제한하며 합의를 압박했다. ‘사회자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면 동의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강압적인 발언도 했다”고 말했다. 박 분회장은 “자회사로 갈등을 겪는 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에선 갈렙이 ‘자회사 찍어내기’ 업체로 유명하다”고 전했다.

민간 컨설팅 업체 갈렙앤컴퍼니가 자신의 누리집에 올린 홍보물.
민간 컨설팅 업체 갈렙앤컴퍼니가 자신의 누리집에 올린 홍보물.
갈렙이 컨설팅을 맡아 자회사를 설립한 여수광양항만공사와 울산항만공사,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등은 전환자 수가 100~250명 안팎으로 많지 않아 비용과 조직 운영 면에선 자회사 설립이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갈렙은 자사 누리집에서 “자회사 설립과 운영의 최고 전문 기관”이라고 홍보했다.

잡월드와 여수광양항만공사의 컨설팅을 맡았던 갈렙 컨설턴트는 ‘자회사 몰이’를 했다는 비판에 대해 “잡월드의 경우 노사전협의기구가 구성된 뒤 들어갔는데, 회사 쪽과 노동자 모두 협의 절차를 모르고 있어서 조언을 한 것일 뿐 자회사로 몰아갔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가 컨설팅을 진행한 기관 중에 직고용이 된 기관도 많다”고 말했다.

갈렙과 함께 공공기관에 자회사 설립 관련 컨설팅 ‘러브콜’을 받은 곳이 한국능률협회컨설팅과 에프엠어소시에이츠다. 능률협회컨설팅은 공공기관 33곳(정부 출연 연구기관 21곳 공동컨설팅 포함)과 31억원어치의 컨설팅 보고서 계약을 맺었다. 이 가운데 31곳이 자회사를 세웠거나 추진 중이다. 에프엠어소시에이츠도 5개 공공기관과 8억7천만원어치 컨설팅 계약을 맺었고, 이 중 4곳이 자회사를 설립한다. 갈렙과 능률협회컨설팅, 에프엠어소시에이츠 등 3개 업체가 컨설팅 계약을 맺은 공공기관 53곳 중 48곳이 자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인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의 자회사 노동자들은 “능률이 회사 쪽 요구에 맞춰 직고용 인원을 최소한으로 산정해 10명 중 8명이 자회사로 갈 근거를 만들어줬다”고 주장했다. 에프엠어소시에이츠가 컨설팅한 한국마사회 자회사 노동자들도 “자회사가 적합하다는 컨설팅 결과를 근거로 사측이 자회사 합의를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민간 컨설팅 업체 갈렙앤컴퍼니는 2017년 8월 여수광양항만공사의 컨설팅 최종 보고서를 통해 10개 용역 직군 모두가 자회사 전환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항만은 국가보안시설로 외주화 보다 직고용을 통해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민간 컨설팅 업체 갈렙앤컴퍼니는 2017년 8월 여수광양항만공사의 컨설팅 최종 보고서를 통해 10개 용역 직군 모두가 자회사 전환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항만은 국가보안시설로 외주화 보다 직고용을 통해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공공기관들이 자회사 결론을 얻기 위해 고용노동부가 무료로 운용한 중앙컨설팅을 이용하지 않고 이들 민간업체의 컨설팅을 받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용부는 국책연구기관 연구원과 현직 교수, 변호사, 노무사 등 30여명으로 중앙컨설팅팀을 꾸렸지만, 이용률은 저조했다. 중앙컨설팅팀이 나서 정규직 전환 선도기관들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받도록 독려를 했음에도 공공기관 중 30곳만 중앙컨설팅팀을 찾았다. 중앙컨설팅팀에 참여한 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원은 “많은 기관이 중앙컨설팅을 꺼렸다. ‘중앙컨설팅은 노동자 쪽에 유리하다’는 기관도 있었다. 민간 컨설팅으로 기업이 원하는 자회사 결과를 얻기 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회사를 만들 필요성이 떨어지는 공공기관까지 억대 컨설팅을 받으면서 자회사 설립을 밀어붙인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 취지에 맞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옥기원 김규남 기자